한 연구자께서 제가 쓴 토마스 아퀴나스 관련 논문에서 사용된 용어들, '영혼'과 '정신', 그리고 '이성'(과 '지성')의 관계와 구별에 대해서 메일로 물어 보셨습니다. 제가 쓴 답변이 복잡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려 봅니다.

(Warning: 교양과목 수강생이나 철학에 전문지식이 없는 분들은 두통이나 '철학 혐오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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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영혼과 정신을 어떻게 구별하시는지, 그 차이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토마스에게 영혼은 생명의 원리(식물이나 동물이 갖는)이면서 동시에 지성의 원리가 함께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배운 것 같은데

교수님의 글을 읽다보면 영혼과 정신을 구별하시는 듯(영혼에서 정신이 분리되어 있는 것인가?)도 하고

동시에 비슷한 의미로 표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왜 굳이 영혼과 정신을 구별하셔서 표현하실까?)

한편으로는 존재론적 구성본질로서 몸과 영혼을 말씀하시고 그 존재(몸과 영혼이 결합된 존재)의 본성으로 이성과 같은 의미에서 정신을 언급하시는 것 같기도 해서

저에게는 명확하게 영혼과 정신의 의미가 다가오지 않습니다-교수님께서 본성으로서 정신을 말씀하신 거라면 정신과 이성은 같은 의미인지요?

 

사실 이 두 가지 용어는 토마스 아퀴나스뿐만 아니라 이미 아우구스티누스부터 계속해서 혼재되어서 사용되고 있었고 학자들마다, 그리고 사용하는 맥락마다 다르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원하시는 만큼 정확하게 규정된 상태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토마스가 즐겨 쓰던 영혼’(anima, soul)이라는 단어보다는 근대 이후 정신’(mens, mind, Geist) 등이 더욱 자주 사용되면서 이를 구별할 필요성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규정하자면

 

영혼은 근대 이후 주로 사용된 정신보다 더욱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혼은 보다 더 고등하고 육체와 물질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 원칙과 작용 원칙(정신)만이 아니라, 육체와 통합되어 생물 전체를 이루는 삶의 원리인 동시에 육체적 삶을 넘어서 인격체의 중심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도 포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영혼 개념과 정신 개념은 그것들을 논의하게 만들었던 관심에서도 큰 차이가 납니다. 철학적 사유의 고전적 전통에서 영혼과 육체의 문제는 주로 삶과 죽음의 문제의 지평에서 제기되었습니다. 최근의 논의에서 그 문제는 심신(psycho-somatisch) 현상의 배경에서 제기됩니다.

중세,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제한해서 말하자면, 마찬가지로 영혼은 포괄적인 인격체의 중심역할을 하는 것과 인간을 이루는 형상적 원리 모두를 가리킨다면, ‘정신(2.1) 가지적 사물과 신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 능력의 주체로서의 영혼, 또는 (2.2)그 안에서 작용하는 기능을 뜻하곤 합니다. (2.1)의 경우에 영혼과 종종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경우에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 animus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토마스는 필요에 따라서 이를 섞어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2.2)의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될 때는 지성이성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개념이 다양하게 사용되어 혼란을 일으키는데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이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할 경우에 (2.2.1) ratio를 전제로부터 결론을 추론해가는 지성 작용, (2.2.2) intellectus를 자명원리를 포착하는 직관적 지성작용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이 둘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로 intellectusintelligere를 사용했습니다.(STh I,79,8-9; 앤소니 케니, 아퀴나스의 심리철학, 이재룡 옮김, [가톨릭대 출판부, 1999], 78-80쪽 참조) 또한 intellectus는 지성작용과 그 지성작용의 결과물인 개념 conceptus등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철학사 상으로 논의 지평을 넓혀 보면 더욱 복잡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앞서 지성단일성 논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죽지 않는 지성과 육체의 형상으로서의 영혼이 정확히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분명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죽지 않는 지성(정신)이 영혼의 분리가능한 부분처럼 말하는 곳도 있지만, 그것이 영혼의 밖에서온다고 표현할 때나, 영혼이 육체의 형상이라는 점을 강조할 때는 영혼이 지성을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적인 질료형상론을 엄격히 적용하면, 영혼은 바로 육체의 형상이기 때문에 육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어떤 것의 형상은 그것과 함께 실체를 이루는 질료를 떠나서 자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에게 고유한 정신(2.2), 즉 지성적 능력을 영혼과 구별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축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인 정신”(mens)과 인간과 가축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영혼(anima) 사이를 구별하면서 시작했던 것을, 데카르트는 짐승에게는 영혼, 즉 정신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습니다.

 

너무 복잡해졌으므로 정리하자면, 인간 안에서 발견되는 다양성은 본질적 통일을 형성하는 데 이것을 통일하는 원리는 근본적으로 영혼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만 고유한 정신적 원리를 제공해 주는 지성적 영혼 또는 그 영혼의 기능을 정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정신(지성적 영혼)이야 말로 인간의 육체적 생명의 원리이며, 이성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며, 전체 인간을 존재하도록 하는 원리이므로 그것이 주체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2.1)영혼과 혼용되고, 그 기능의 의미로 더 정확하게 사용할 때(2.2)는 영혼과 구별되며 오히려 지성이나 이성 등과 혼용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문맥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말로 철학하는 경우에 겪게 되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바로 용어 번역이 통일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문제도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을 경우 그 번역자가 철학의 주요 개념을 어떤 언어로 번역하는 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그 책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라틴어 본문을 번역하는 경우나 저희 중세철학회에서는 일반적으로 anima<영혼>, mens<정신>, ratio<이성>, intellectus<지성>, intelligentia가 사고 작용의 결과로서의 intellectus를 나타낼 경우, <지성>, 사고 행위를 의미할 경우 <인식>이라고 번역합니다.

 

용어를 완전히 규정해서 사용하면 좋을 듯 하지만, 언어는 본래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과도하게 규정할 경우 표현력이 제한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가능한 대로 엄격하게 사용하되 오해의 여지가 없을 때에는 다른 사상과의 대화를 위해서도 유연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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