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의 진리에 관한 질문

-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원할 만한 것을 원하고 그것을 소유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 행복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원할 만한 것이란 불변하고 우리와 필연적 관계를 맺고있는 바로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진리 그 자체인 신을 사랑하고 그와 일치를 위해 노력한다면 신의 은총을 신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진리는 내부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1'이라는 개념을 아는 것, 배중률-모순율-동일률을의 개념원리를 아는것, 그리고 아름다움을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내면의 원리만이 확실한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우리의 존재 또한 확실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는 우리의 내면을 집중하는 것을 통해 '기억'된다고 하였습니다.

 

1. 제가 이렇게 이해를 하였는데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신=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 내부의 진리='1', 동일률-배중률-모순율, 아름다움 파악 능력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진리=신=''1', 동일률-배중률-모순율 인가요? 그러면 신을 사랑하는 것이 동일율 이러한 것을 사랑하는 것인가요? 이 부분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동치 관계를 의미하기 위해서 '1', 동일률-배중률-모순율, 아름다움 파악 능력 등의 예를 든 것이 아니라 이것은 우리 안에 일단 영원불변한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든 예에요. 그래서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신이란, 이러한 영원불변한 진리를 유한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우리가 소유하도록 조명해 주시는 분, 다른 말로 내적 교사라고 할 수 있지요.

 

2. 아니면 '1'을 파악하는 능력, 동일률-배중률-모순율, 아름다움 파악 능력은 진리를 파악하는데 우리에게 내재된 능력인가요?

네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내재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그리고 '1', 동일률-배중률-모순율, 아름다움 파악 능력과 같은 내면의 원리와, 사유하는 우리 존재에 대한 확신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요? 사유하는 우리 존재에 대한 확신은 아우구스티누스 진리론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왜 나오게 된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앞선 모든 진리는 정신적인 것에 대한 확실성인데, 그렇다면 정신 밖에 존재하고 있는 사물에 대해서도 그러한 확실성을 가질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가시적인 사물들은 감각 기관의 오류에 대한 위험 때문에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어렵지만 ‘사유하는 존재’만은 이러한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4.

p. 48

그는 밖에서 진리를 구하는 자는 결코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주장을 펼친다. 밖에서 구하는 자는 결코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신 안에 있고 신이 곧 진리기에 그 진리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인가요?

오히려 거꾸로 표현해서, 인간은 영원하고 불변한 진리를 스스로 확정지을 만한 절대적인 기준을 만들어낼 수 없고, 인간의 감각에 의해서 포착되는 모든 사물들도 그 자신 안에 시공간을 넘어서 영원히 불변하게 남아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 밖에 사물에만 매달린다면 진리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듯 해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악과 자유의지 관련질문

-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선의 결핍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도덕악을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행해진 악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악을 행하는 것을 인간의 완전성, 본성의 결핍되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 볼 수 있나요?

맞아요. 자유의지의 오용으로부터 야기된 도덕악과 ‘악은 선의 결핍’이라는 설명 사이에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바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올바른 질서, 곧 존재의 질서에 일치하는 가치의 질서를 가지고 사랑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는 인간의 완전성이 결핍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지요.

 

- 그리고 선의 결핍이라 하였을 때 '선의 결핍은'은 어떠한 것의 '본성, 완전성의 결핍'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어떠한 것의 본성이나 완전성은 다양한데,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선'은 하나의 것이 아닌 다양한 것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니면 악은 선의 결핍이라는 문구에서 '선'을 완전성이라고 해석만 하는 것인가요?

각각의 본성이 다수이고 다양한 만큼, 그만큼 그 본성이 지녀야할 완전성의 결핍을 통해 생겨나는 악도 다양할 수 있어요. 그러나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최고선은 신으로서 하나로 존재할 수 있는 반면에, 모든 결핍을 하나의 근원으로 만드는 악의 최고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플라톤주의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이에요.

 

- 계속해서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질문인데요.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왜 주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이해가 안되서요. 교재에도 보충 설명이 안되어있구요. 자유의지가 왜 주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은 철학적으로 설명된 부분은 없나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 쓴 제 설명으로 대체할께요. 읽어 보세요.

“창조주가 인간이 죄를 지을 가능성을 미리 알았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용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답한다.

“모든 것의 최고 주인이 되는 진리가 우리들 속에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실 것입니다. […] 하느님이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분명하다면 자유의지가 정당하게 주어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의지가 부여되지 않았어야 한다든지 다른 방식으로 부여되었어야 했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자유의지론』II,2,4)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자유의지를 준 행위는 정당한 것이라는 점만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자유의지가 결여된 동물들보다, 비록 잘못을 저지를지라도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 더욱 훌륭한 존재의 단계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문제에 대한 완결된 대답을 주지 않지만, 그가 제시한 방향성은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후대의 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란 신의 인도를 따르고 신에게 사랑과 존경을 드리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필수적인 조건이다.

물론 자유는 성숙되지 못한 인간에게는 너무 위험한 선물이었을 수 있다. 인간들이 그 선물을 자신과 타인을 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선물이 신의 놀라운 사랑에 의해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인간 생활에서도 자녀와 같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할 때, 할 수 있는 최선책은 그가 잘 되기를 바라면서 더욱 사랑하는 것이다. 바로 신도 당신의 사랑 때문에 인간과 세계를 자유롭게 두고자 한다. 따라서 신은 결코 인간의 고통과 악을 원하지 않지만, 인간에게 자유를 주고, 그 소중한 선물을 위해 악이 발생하고 따라서 고통이 초래될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우선적으로 인간이 겪는 극심한 고통에 대한 책임을 신에게 직접적으로 돌리지 않아도 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신은 더 이상 우리들을 처벌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심판관’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 자신의 행동, 즉 자유의 남용이 빚은 결과가 우리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에서 악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악의 원인을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찾았다고 하셨잖아요~

자유의지 그 자체는 선한 것이지만 선과 악이 혼재하는 중간선이고 인간은 자유의지를 악용하여 신과의 관계를 끊을 때 악이 생긴다고 설명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제가 궁금한 건, 선한 실체인 신이 무로부터 창조한 이 세계에서 어떻게 '악'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생각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 신이라고 한다면 신으로부터 나온 것은 모두 선해야 옳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신의 세계에서 어떻게 악이 창조될 수 있는지 납득이 잘 안가서요. 이 논리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의문입니다.

그 과정을 간략히 설명해 보면 ‘무로부터 창조된 모든 사물’은 신과의 관계가 손상되면 신이 창조한 완전성으로부터 멀어져서 ‘선의 결핍’ 상태에 빠질 수 있는데 그 가장 중요한 동인이 ‘인간의 자유의지의 오용’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지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한 아래 글을 읽어 보기 바래요.

“전지전능한 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 왜 이러한 결핍이 생겨나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무(無)로부터의 창조’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존재 자체인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으로, 무에서 다른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다. 따라서 피조물인 자연 사물은 신이 창조한 것이기에 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면 언제나 무로 돌아가 소멸하려는 성질이 있다. 신의 힘에 의존하는 피조물은 신과의 근원적인 연결이 손상되면 선한 본성의 결핍 때문에 악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이 악의 실재하는 이유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차적인 대답이었다.

...

‘악은 선의 결핍’이라는 설명을 통해서 신이 악을 창조했다는 일차적인 책임은 면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했지만, 악과 관련된 질문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도대체 선 자체인 전능한 신에게서 멀어져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은 어떻게 가능한가? ‘전능한 신이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했다’라는 주장은 우리가 현실에서 직접 느끼는 악과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도 이러한 문제점을 마니교에 심취했을 때부터 뼈져리게 자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악의 문제의 핵심이 자연에 있어서의 악으로부터 자기 속의 악으로 옮아오게 되었을 때에 아우구스티누스는 더 이상 ‘악은 선의 결핍’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설명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으로부터 멀어져서 악으로 기울어지는 더욱 능동적인 원인을 찾아야만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주제에 대해 『자유의지론』에서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은 인간들이 저지른 악의 조성자가 될 수 없으며, 인간들이 당하고 있는 악을 만들어 낸 자는 인간 자신’이라고 주장한다.(『자유의지론』I,1,1) 이처럼 악을 행하는 것의 원인이 신이 아니라면, 인간 내면의 어디에서 보다 본질적인 원인이 탐색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자유의지론』I,3,8) 악의 원인은 금지된 법률과 같은 외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 데, 그 근원은 ‘탐욕’(cupiditas), 또는 ‘자유로운 의지(voluntas)의 잘못된 사용’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선과 악이 혼재하는 자유의지를 악용하여 인간이 신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할 때 선한 실체인 신이 계속 존재한다면 인간이 그렇게 악을 형성하려 했을 때 방치하는 것이 좀 납득이 안 갑니다.

이런 논리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이용해서 신과의 관계를 끊어서 악을 형성할 때 모든 세계가 다 악으로 가득차도 신은 인간의 세상과 무관하게 존재할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개별적인 악이 생겨날 때마다 일일이 개입해서 그 악의 형성, 또는 완전성의 결핍을 방지한다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거에요.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이 스스로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한 사랑의 형태일 수 있겠지요. 우리 부모님들이 잘못된 길을 들어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 비슷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너무 극도에 도달할 때 부모님이 포기하지 않듯이 그리스도교의 신의 자신의 아들을 보냈다고 가르치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인간들의 타락과 같은 것에 마음 아파할 수 없는 절대적 초월자인 신플라톤주의의 일자와는 차이가 나는 것이지요.

 

5.

p.56

피조물인 자연 사물은 신이 창조한 것이기에 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면 언제나 무로 돌아가 소멸하려는 성질이 있다. 신의 힘에 의존하는 피조물은 신과의 근원적인 연결이 손상되면 선한 본성의 결핍 때문에 악으로 기울어진다.

여기 부분이 제일 헷깔리는 부분입니다. 아, 궁금한 걸 글로 표현하는 게 정말 어려운 거 같다고 지난번부터 느끼고 있습니다.

신플라톤주의는 일자에서부터 선이 유출되어 아래로 향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래서 위로 갈수록 더 가치있고 아래로 갈수록 가치가 없으며 선이 전달되는게 적어요. 일자에서부터 순서대로 말하면 정신, 세계혼,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질료인데요. 7가지로 나눠놓은 것 중에 고작 신의 선이 제대로 전달되는 부분이 3번째 인간까지 밖에 없으면 1) 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해볼 순 없을까요? (선이 제대로 전달된다는 표현은 정신, 세계혼은 거의 신적인 존재로 선이 충만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

이후에는 7단계가 아니라 훨씬 더 세분하는 형태로 신플라톤주의의 위계사상이 발달하지만, 신 또는 일자의 선은 인간에게까지만 미치는 것은 아니에요. 7단계로 보더라도 마지막 단계인 질료를 제외한 모든 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선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아우구스티누스는 더욱이 질료조차 피조물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악의 근원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해요. 어떤 사물도 그 자체로 무가치한 것은 없고 나름대로 선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모든 같은 정도로 불완전한 선을 가지고 있는 전체보다, 더욱 완전한 선으로부터 덜 완전한 선까지 다양한 완전성의 단계를 가진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에요. 마치 렘브란트나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어두운 배경이 있을 때 빛을 받은 부분이 더욱 돋보여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것과 유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2) 무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악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네 그래요.

 

3)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잖아요. (아마도 선악과를 맘대로 먹어서?) 원죄를 타고 나면 이미 선한 신이 만들었다고 보는 것 사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원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신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정한 부분이에요. 따라서 죄란 신학적으로 신으로부터 멀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요. 신은 전체를 조화롭게 창조했지만, 인간의 원조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새로운 인간이 태어날 때면 악의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다른 책에서 쓴 글을 읽어 보세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온 세상에 고통이 등장하게 된 과정을 생동감있게 그리는 창조설화에 바탕을 두고 원죄론(原罪論)을 체계화했다. 각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기 힘든 악과 고통의 상태가 신이 자연에게 부여한 질서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최초의 인간들, 원조들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이다. 아담과 에와의 죄는 자신의 개인적 죄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영벌을 선고받은 집단(massa damnata)으로 만들었으며, 개인의 모방(imitatio)이 아닌 인간의 정욕(concupiscentia)이 널리 퍼짐(propagatio)으로써 세세대대로 건네지는 원죄가 되었다. 더구나 인간은 이 죄에 대하여 자신의 자유의지를 이용하여 범죄함으로써 죄를 추가하게 된다. 신이 자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낙원의 원상태에서 인간의 본성은 신을 향해 나아가도록 직접 의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원죄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더 이상 이를 행할 능력이 없다. 『고백록』에 따르면 죄를 지은 인간은 유아기부터 이기심에 물들어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후천적 본성인 습관에 사로잡힌 존재이다.(

<고백록> I,7,11)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원죄의 족쇄로부터 풀려나지 못한 증거로 인간의 욕정을 들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지만 뜻하는 대로 행하는 데 있어서는 그것이 무력하다는 실증적인 예인 셈이다.(<결혼과 정욕론> I,27) 따라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렇게 원초적으로 부패된 인간 본성은 결국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치유되고 인간은 재탄생될 수 있다. 따라서 현세적인 삶에서는 그리스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4) 원죄라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고 나는 것인데. 이미 악하게 태어난 인간이 악을 저지르는 건 본성상 당연하다고 봐야하는건 아닐까요? 오히려 교육이나 계기를 통해 결단해 하늘의 사람이 되는 것이 본성에 어긋나는 건 아닌가요?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모든 인간은 ‘낡은 사람’(땅의 사람)으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아우구스티누스도 이야기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새 사람’(하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성령의 은총이 꼭 필요한 셈이지요. 그러나 성령의 은총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본성에서 어긋난다라고 보기 보다 잃어 버렸던 본성을 되찾게 되는 것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보고 있어요.

 

 

5) 자유의지가 있는 것은 인간뿐이기에 인간에게만 악하다, 선하다 라고 할 수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선이 유출되어 아래로 내려오는 거라면 아래로 갈수록,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에 갈수록 선이 닿지 않아 악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그런데 동물, 식물, 무생물, 질료에게는 악하다, 선하다라고 표현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존재는 다 선하며 인간이 그것을 목적에 맞게 향유하는지, 사용하는지와 같이 인간의 오용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우구스티누스는 뜬금없이 중간에 껴있는 인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건가요? 저는 너무 뜬금진거 같은데..

나중에 라이프니츠 같은 이는 그 아래의 것을 ‘형이상학적인 악’이라고 부르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은 악이라기보다 완전함이 덜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에 대해서는 위의 56쪽의 답변을 참조하세요.

그리고 인간을 신과 동식물과 같은 대상의 중간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이 아니라 신플라톤주의를 넘어서서 고대철학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에요. 후대의 파스칼의 ‘생각하는 갈대’도 같은 현상을 묘사하는 것이구요.

 

 

아우구스티누스 관련 기타질문

1. p. 43

신의 아들이 사람이 되었다는 육화를 믿지 못하는 한편.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요?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을 들으면서 성서의 영적의미를 깨닫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본격적인 성서 연구를 통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회개 체험을 통해서 육화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지요. 그 과정에 대해서는 『고백록』에 여러 곳에 단계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요.

 

2. p. 44.

평생 독신으로 살며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결혼한 자기 아내와 아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예전 서양철학전통에서 같이 이동다녔다고 들은 것 같은데 독신으로 산다니! 이미 결혼한 사람인데! 죽었나요? 재혼을 안한다는 말인가?

이미 아데오다투스 엄마와는 헤어진 상태였고,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의 약혼녀가 있었지만 더 이상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에요. 물론 아들 아데오다투스와는 계속해서 살면서 <교사론>이라는 멋진 대화까지 나누었지만, 『교사론』을 내려고 할 무렵이나 그 전인 아마도 389년 혹은 390년 애석하게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매우 애통해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물론 타가스테 공동체에서부터 독신으로 살면서 수도생활을 했지요.

 

3.

신은 진리요, 길이요, 빛이요. <성경>

p. 43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와 만나면서 자신의 성서 해석 방법과 함께 지금까지 품고 있었던 그리스도교 성경에 대한 편견을 버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전에 성경에 대한 의문이 많았잖아요. 창조에 관한 것이라던가, 비윤리적인 부분이라던가, 복음서의 족보가 맞지 않는 부분 등이요. 1) 그런데 왜 이 구절에는 의구심을 품지 않았나요?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해설한 강의에 들어가서 큰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를 서철에 들은 적이 있는데 잘 기억이 안나요. 2) 성경에 대한 위의 세가지 의문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창조와 성조들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해 의문을 풀기 위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매우 방대한 

<창세기 (축자) 주해>라는 책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요. 그때 암브로시우스에게서 배운 영적인 해석이 큰 도움이 되었지요. 복음서의 족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찾아 보지 못했지만) 전통적인 해석에 따라 하나는 요셉의 족보이고, 다른 하나는 마리아의 족보라는 형태로 보아서 직접적인 모순에 빠지는 것을 해명했을 것 같아요.

 

 

 

 

 

 

그리스도교와 신플라톤주의 관련 질문

1.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플라톤주의를 사상중 귀족이라고 한 것은 유출설과 창조론의 유사성 때문이라고 봐도 되나요?

네, 그것이 중요한 한 가지 사항이지만 그밖에도 영혼들이 일자로 되돌아 가려는 생각은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태도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요. 더욱 중요한 것은 다신교적인 그리스로마 문화의 분위기에서 ‘일자’라는 개념을 통해서 유일신을 설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지요. 또한 영혼 정화 등을 통해서 정신을 중요하게 여긴 것도 그리스도교의 태도와 유사점이 있었어요.

 

2. 앞쪽에 알렉산드리아 학파 쪽 설명하실때 유출설과 창조론 차이점 설명해주실때는 영혼의 선재에 대한 차이점도 설명해주셨는데, 영혼의 선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교의 입장이니 아우구스티누스도 이와 같다고 봐도되는 거죠?

네 맞아요. 아우구스티누스가 바로 그러한 입장이었고, 그래서 과거와 연계된 ‘상기’가 아니라 현재에 일어나는 정신 집중을 뜻하는 ‘기억’이라는 것을 통해 영원한 진리를 설명하려고 했지요.

 

3. 신은 절대필연유라는 말은 존재근거가 자신에게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뜻이 맞나요?

네 맞아요. 자기 자신의 존재 근거를 다른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에요. ‘존재 자체’라는 말도 같은 것을 의미해요.

 

4. 알렉산드리아 학파도 철학을 받아들이며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배웠습니다. 그들이 받아들인 것과 아우구스티누스가 받아들인 것의 차이점이 존재하나요? 아니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인 것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요?

다른 친구의 유사한 질문:

p.60

이처럼 플라톤 사상이 좋은 길잡이가 된 것이 사실이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뚜렷이 자각하고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수정하려 했다.

p.39

이때 교리를 확립한 이가 바로 최고의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오리게네스가 신플라톤주의로 그리스도교를 연결해 설명하고자 했을때 그리스도교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이단으로 판명되었잖아요.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상충되는 부분을 조금 고친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닌가요?

전체적으로 알렉산드리아학파와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주의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중세철학사라서 간략하게 이야기했지만 알렉산드리아학파는 신플라톤주의가 성립되던 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기 때문에 완성된 형태의 신플라톤주의라기 보다 그러한 발상들을 주로 받아들였어요. 반면에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로티누스와 포르피리오스 등의 저작을 통해 그 사상을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요. 또한 오리게네스 등이 신플라톤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물질을 악으로 규정하거나, 종속설 등의 이단적인 주장을 펼쳤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론을 더욱 정확하게 다듬어 나갔지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3 성자와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히 같은 분인가요? 커피사랑 2018.12.19 49
162 교수님 질문있습니다. sung0292 2018.01.28 52
161 가톨릭에 관한 몇 가지 질문입니다. [2] 커피사랑 2017.12.24 65
160 보에티우스: 신의 섭리와 자유의지와 관련된 예지와 예정 박승찬 2017.12.05 75
159 관상/명상 (contemplatio, theoria) meditation 2016.11.04 144
158 교수님 안녕하세요 카이레 2016.09.17 150
157 교수님 질문있습니다 [1] 카이레 2016.09.04 200
156 무죄한 이의 고통과 신의 존재 file 박승찬 2016.08.15 278
155 데카르트 신존재 증명 관련 의문 박승찬 2015.06.11 5945
154 교수님!!! 서철 3차 발표 관련해서 질문이 있습니다! [2] 박현아 2015.06.02 7111
153 [철학 용어 해설]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의 구별 박승찬 2015.05.25 33076
152 아우구스티누스 악, 사랑의 윤리;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증명 관련 [1] 박승찬 2014.12.13 18415
151 대한민국 땅의 토마스 아퀴나스 의 부활, 신이 이나라에 주신 치료의 선물 박승찬 교수님 피터킴 2014.12.02 14908
150 엉뚱한 생각 [1] 낄낄이 2014.09.26 9313
149 성어거스틴 "악" 에 대한 철학적 위상 에 관한 질문 [1] file 피터킴 2014.08.04 10561
148 고대나 중세 성령은사주의 에 관한질문 [1] 피터킴 2014.07.18 8946
147 박승찬교수님께 [2] 불타는토끼 2014.03.13 10885
146 지성과 이성의 개념 [1] 빗소리 2014.02.20 24347
» 중세철학사: 아우구스티누스 관련 질문(진리-악과 자유의지 등 종합) 박승찬 2013.10.18 19641
144 교부철학 관련 질문 [3] 박승찬 2013.10.06 21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