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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중세는 ‘암흑의 시대’였는가? 지난 20세기 후반에 국내 서양사학계를 통해 프랑스 아날학파 역사학자들의 주목할 만한 ‘중세사’ 분야의 연구성과들이 활발히 번역, 출판돼 일정 부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서양 중세에 대한 이미지가 온전하게 실제 속살을 다 드러내보였다고 볼 수는 어렵다.
중세 시대를 사상사적, 문화사적 의미로 탐구한 책이 발간됐다.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의 ‘중세의 재발견’은 서양 중세를 결코 서유럽만의 것이 아닌 당시 선진 문명이었던 인접 비잔틴 문화와의 교류 등을 매개로 다각도로 분석한다. 저자는 중세는 ‘현대를 비추어 보는 사상과 문화의 거울’이라고 본다.
저자는 중세가 재평가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중세를 비판했던 근대 사상의 문제점에서 비롯됐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데카르트가 강조되기 시작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는 헤겔의 철학에서 그 절정에 도달했지만, 이런 경향을 보편적 이성 이외의 감정, 육체, 개체들의 소중함을 무시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특히 저자는 “제1∼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상과 환경오염 및 점증하는 재해 같은 새로운 위협 속에 모든 것이 덧없으며 찰나적이라는 허무주의가 널리 퍼져나갔다”며 “근대 사상이 야기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 고대 철학과 중세 철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중세의 ‘다양성’이다. 즉 긴 시간만큼이나 4계절의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고 본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종합한 사상 체계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9세기까지의 추운 겨울을 버텨야만 했다.
일부 학자가 중세의 시작으로 삼는 카를 대제의 문예부흥은 본격적인 발전을 준비한 단계였고 12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을 통해 맞게 된 스콜라 철학의 융성기(13세기)는 놀라운 사상사적 발전을 이룩한 여름(성수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14세기 접어들면서 자연 재해와 인간이 저지른 무질서로 중세의 전성기는 막을 내린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고대하는, 계절로 치면 가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시각은 다양한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 편견에 의해 왜곡될 수 있고 더러는 새로운 성찰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과점에서 본다면 저자에게 있어 중세는 “만화경과 같이 다양한 모습을 지진 정신적·문화적 보화가 가득 담긴 보물창고”라고 부를 만한 것 같다.
“중세처럼 지나간 역사와 문화가 이와 같다면, 유동적이거나 진행 중인 사태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지역감정, 종북 성향, 성적인 차이, 외국인 노동자 및 새터민 등에 대해 너무나 쉽게 판단을 내리고 이를 확신하는 경향이 많다.”
〈길·1만5000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