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의 전통을 듣는 한 학생과 이메일을 통해 나눈 대화가 다른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이곳에 옮겨 싣습니다. 

[첫 번째 질문과 답변]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전 서양철학의 전통을 듣고 있는 고재희 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메일로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 데카르트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나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을 가지고 또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었는데,


결국 결론이 나질 않았습니다.


신앙적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철학적으로는 연결고리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데카르트의 신의 존재라는 부분에서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데카르트는 신을 하나의 관념적 존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생득관념으로 신을 바라보고 있고, 신이 관념의 근원으로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완전한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신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과 인은 성실하다는 것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신은 하나의 창조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부여받고는 인간에게 모든 자율권을 주었다고 했는데, 이런 논리라면 신이 완전성을 가진것은 가능하지만, 그 완전성으로 성실성까지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데카르트에게 원리로서만 작용을 하는 신이 어떻게 성실성을 가지고 인간을 기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었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고 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설명을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고재희 학생에게


의문을 가지고 계속 사고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데카르트는 이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게 사고하고 있지 않고 간단히 답변합니다.


성찰이라는 책의 제4성찰에서


"첫째 신이 나를 속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속임이나 기만 속에는 어떤 불완전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일 수 있다는 것이 똑똑하거나 재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징표인 듯하지만, 속이려고 한다는 것은 분명 악의나 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속임 속에 있는 불완전성과 신의 완전성 사이의 모순을 강조하고 있는 말이지요.


생각해 보고 더 의문이 생기면 계속 이야기 해 봅시다.


수업시간에 만납시다.


박승찬 교수






[두 번째 질문과 답변]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친절한 설명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역시 철학이란 굉장히 심오한것 같습니다.


무심결에 던진 의구심이.. 이토록 저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할지는 몰랐습니다.


다른 철학자들의 논리적 구성면에서는 이토록까지 의구심이 들지는 않았었는데,


저에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증명보다 데카르트가 지뢰밭인 것 같습니다.


지난 수업시간에 말씀해주신 설명과 이메일을 통한 설명을 듣고나니 의구심이 계속해서 생깁니다.




먼저 지난 수업시간때는 완전성과 불완전성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면서


완전성에 불완전성이 들어가면 이미 그것은 불완전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신의 완전성이란 불완전성을 완전히 엎을수 있는 커다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고재희 학생의 생각은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신의 완전성이란 불완전성을 엎을 수 있는 존재이고, 이런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많은 학자가 이야기한 “신은 악조차 선한 용도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생각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신이 불완전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신이 불완전한, 또는 악한 행동을 함으로써 완전함과 최고의 선함이라는 자기 자신과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입니다.


중세 말기의 니콜라우스 쿠사누스 같은 학자는 “모순된 것들의 일치”라는 개념을 통해서 모순되는 것조차 신에게는 일치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명료함을 추구하고 있는 데카르트에게는 이런 모순은 신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데카르트가 신이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신이 세상을 창조한 제 1존재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인간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라고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한 이후에는 그 존재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것과, 신이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개념 사이가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기계론적 자연관을 가진 데카르트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탐구가 그를 기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로 귀결되어야 할 것 같은데 신에 대한 믿음 역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건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신이 세상을 창조한 이후에 물러나 있는 신(기계론적인 신관 Deus ex machina, 한가로운 신 Deus otiosus)관으로의 발전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해서 근대가 지속되면서 서서히 완성된 과정입니다. 근대초기의 데카르트에게서는 중세의 신관의 흔적인 인격적이고 인간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역사에 개입하는 신에 대한 표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둘째, 그럼에도 데카르트에게서도 신의 성실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주체와 객체(외부대상)에 대한 지식 사이에 오류의 원인(악한 영의 장난 등)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인격적인 신의 성실성보다 자신의 합리적인 사고 체계의 전제조건 또는 주춧돌이 될 수 있는 것에 대한 보장만이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지요.


신의 성실성을 통해 외부지식에 대한 확고한 기반이 마련된 이후에는 인간은 신의 간섭이나 개입없이 안심하고 자연에 대한 지식 취득과 이를 통한 자연지배가 가능해지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계속해서 의구심만 늘어가네요.


지난 이틀동안 열심히 생각해본 결과가 이렇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고재희 드림.




=> 철학전공 학생이 아닌데도 강의를 통해서 이렇게 깊게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17시간의 강의, 인문학부장과 여러 위원회 활동, 개인의 연구와 번역 등으로 바쁘지만 가장 기쁜 시간은 이렇게 학생들과 토론하는 시간입니다.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박승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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