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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

‘영혼의 가난함’ 설파한 신비주의 스승

by 박승찬 posted Dec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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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
(16)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동상. 독일 바드 뵈리스호펜(Bad W?rishofen), 조각가 로타 스푸르젬(Lothar Spurzem), 2012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동상. 독일 바드 뵈리스호펜(Bad W?rishofen), 조각가 로타 스푸르젬(Lothar Spurzem), 2012년.

최태민, 최순실 부녀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연관관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일부 언론은 최순실을 무녀로 규정하며 러시아 제국의 몰락을 자초한 라스푸틴과 비교하기도 했다. 한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종종 종교체험에 의지해서 위안을 받고자 한다. 서양 중세에서도 14세기가 시작하면서 교황과 황제간의 알력이 심화해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해지고 지진·해일 및 페스트 등이 만연하자, 사람들은 마치 지구에 종말이라도 오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위기 속에서 삶의 무상함을 경험했던 많은 이에게 추상적인 생각은 점차로 힘을 잃었고, 새로운 종교적 체험이 절실해졌다. 쓸쓸한 가을로 접어든 중세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신비주의가 널리 퍼져 나갔다. 바로 독일 도미니코 수도회 사제였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가 신비주의를 정립한 스승이다. 그의 신비주의는 결코 마술이나 주술, 탈혼 상태에 빠진 종교적 체험, 사고의 포기 등을 뜻하지 않는다. 그에게 신비주의란 심오한 이성적 통찰을 바탕으로 모든 실재를 신적인 관점에서 조명하고, 특히 신 자신이 인간의 영혼에 드러나도록 끊임없이 사고하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비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가르침을 베풀었던 것인가?

 

 

신비주의를 계승한 ‘삶의 스승’

 

에크하르트는 도미니코 회원으로서 파리와 쾰른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293년 파리대학 신학부장으로 취임했지만, 그의 첫 교수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에어푸르트의 원장을 역임하는 등 도미니코 수도회 내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회 내의 여러 요직을 거치면서도 파리와 쾰른에서 강의하는 등, 전 생애에 걸쳐 영적인 스승과 학문적인 스승으로 활동했다.

 

그의 저서를 살펴보면, 에크하르트가 뛰어난 반성능력과 추상능력을 지녔고, 중세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에 통달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철학의 범주와 용어를 사용해서 신비체험의 내용을 나타내면서도, 그는 다른 스콜라학자보다 더욱 생동감있고 개성있게 저술했다. 에크하르트는 학문적인 박식함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이론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대신,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작은 단상들을 제시하려 했다. 그는 ‘학문의 스승’이 아니라 ‘삶의 스승’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론적인 교육과 실제 생활을 연결하려던 그의 노력은 방대한 저서, 특히 강론집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강론의 초점은 단순한 현세 탈피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세계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에크하르트는 독특한 언어와 비유로 대담한 생각과 이념들을 표현했다. 일상적인 틀에서 사고하며 종교적 타성에 젖어 있던 이들은 그의 강론을 듣고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에크하르트의 설교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양피지들 중에 하나. 괴팅엔 대학교 소장.

에크하르트의 설교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양피지들 중에 하나. 괴팅엔 대학교 소장.

 

자기 부정을 통한 신과의 합일

 

에크하르트가 강의와 강론을 통해 도달하려던 최종목표는 ‘신과의 합일’이었다. 그는 뛰어난 스승답게 목표를 확정했을 뿐 아니라 이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첫째 단계는 “피조물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신적인 것에서 분리되면 전적으로 무(無)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피조물만 사랑하고 그 안에서 쾌락을 찾을 때 남는 것은 오직 슬픔과 비통함뿐이다. 우리를 신에게 바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상한 영혼 자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의 탐구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바로 두 번째 단계, 즉 신에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자기의 순수한 본질에 도달함으로써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된다. 에크하르트는 신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최고의 덕목을 ‘영혼의 가난함’과 ‘공손함’이라고 보았다. 모든 피조물의 근원인 신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눈이 색깔에 대하여 순수하므로 모든 빛깔을 볼 수 있듯이” 영혼이 비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가 만일 단 한순간만이라도 그대 자신을 온전히 놓아줄 수만 있다면 그대는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신비사상가 
마술·주술 아닌 이성적 통찰 바탕

 

“내 안에 신 계시고, 나는 신 안에”
범신론 주장 의심받아 재판 회부

 

이성 배제한 종교적 체험은 ‘위험’ 
위기의 한국 종교 돌아보도록 해

 

그런데 자신을 비우고 신에게 끊임없이 다가설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지닌 ‘영혼의 불꽃’이라고 하는 내면의 정신과 힘 때문이다. 모든 사물의 원리를 찾아 ‘길 없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은 이 불꽃에 의해 완성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완성단계에서 모든 사물과 자신을 버린 인간은 드디어 신과 하나 되어 찬양할 수 있다. “신이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신 안에 있으며, 내가 나 자신을 전적으로 내놓고 그분의 작용에 내맡기면 맡길수록 나는 더욱 신 안에 있게 된다.” 에크하르트에 따르면, 신은 인간의 순수하고도 맑은 내면적 고독 안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고독 안에서 신의 ‘아늑함’을 느낀 사람은 일상적인 삶의 무수한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자신·세계·신과의 일치를 발견한 사람의 삶은 단순해져 오직 “살기 위해서 산다”.

 

 

단죄받은 영적인 스승

 

신과의 합일에 관한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은 많은 이에게 신에게로 나아가는 훌륭한 지침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의 불꽃’은 ‘창조되지 않은 것’이며, “영혼은 신과의 일치를 통해서 마치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듯이 신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표현들은 범신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의심받았다. 그의 심오한 신앙체험에 기초를 둔 비유적인 표현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에크하르트가 사용한 이율배반적인 표현들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태를 서술하는 데만 익숙한 스콜라 학자들에게는 너무 낯설고 이단적으로 들렸다.

 

결국 그는 동료수사에 의해 고발되어 1326년 쾰른의 추기경이 주관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에크하르트는 문제시된 표현들에 대해 자신이 덧붙였던 설명을 결백의 근거로 제시하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 표현들이 비유적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그는 아비뇽에 체류하던 교황에게까지 불려간 끝에 의심의 일부는 해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끝내 재판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328년에 사망하고 만다. 결국 1329년 3월에 내려진 판결은 그의 작품들에서 발췌된 28개의 문장을 단죄했다.

 

에어프루트 설교자교회에 있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문.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 5)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에어프루트 설교자교회에 있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문.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 5)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에크하르트에 대한 존경은 이어져 독일 신비주의, 쿠사누스의 신학과 철학, 셸링과 헤겔을 포함한 독일 관념론 사상 체계 등을 거쳐 현대의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에크하르트는 자신의 사유를 일정한 사고 체계의 틀에 담으려 하지 않고, 특정한 종교적 전통과 의식을 뛰어넘어 절대자 신에게 도달하는 길을 찾으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다원론 시대에 더욱 많이 연구되어야 할 학자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을 통해 신과 일치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삶과 지식의 일치를 강조했던 동양의 다양한 전통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위기에 빠진 한국 사회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나라의 종교들은 최태민이 만든 ‘대한구국선교단’ 식의 수많은 구국기도회나 구국법회 등을 여는 것을 재고해 보아야 한다. 정의를 무시하고 집권자의 입맛에 맞는 행동을 함으로써 개인이나 교단의 부를 축적하는 이들은 종교의 가르침을 포기한 자들이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진정으로 추구할 종교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이를 통해 상처받은 민심을 어루만져야 한다. 이러한 위안은 이성을 배제한 종교적 체험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성적 반성을 넘어서는 통합적인 가르침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우리는 에크하르트가 강조한 ‘영혼의 가난함’과 ‘공손함’을 통해 가난한 이웃에게 애덕을 실천할 때에야 비로소 완성의 단계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75799.html#csidxa5a348b6cdc8571abb8a4bf5395c9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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