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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학교법인 제114호] 가톨릭 이상을 실현한 후원자와 교육자 - 카를대제와 앨퀸

by 박승찬 posted Dec 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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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14호] 가톨릭 이상을 실현한 후원자와 교육자
소위 ‘비선 실세’의 딸이 한 유명 대학교에서 입학 과정에서부터 학사 관리까지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이 사태에 대해 언론들은 “정부, 돈줄 쥐고 대학 통제… 이대 사태 불렀다”라는 등의 비판 기사를 쏟아 냈 다. 실제로 ‘개혁’을 주도한다던 교육부와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대학 당국은 진정한 학문 발전보다는 시장 경제 의 논리에 따라 대학을 취업 기관으로 만드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해 왔다. 이런 사업을 기획하는 이들은 막대한 자본 만 투자하면 교육의 성과도 짧게는 1~2년, 길어 봤자 3년이면 다 수확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이런 ‘대학의 기 업화’가 결국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법까지 저지르도록 부추겨 대학을 폐허로 만들었다. 이렇게 방향을 잃은 대 학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이와 같은 교육계 풍토에 경종을 울리는 인물을 우리는 중세 시대에 만날 수 있다. 그가 바로 ‘샤를마뉴’라고도 불리 는, ‘카를 대제’(Karl der Große, 742〜814)이다. 프랑크왕국을 통일한 정복자로 알려진 그가 도대체 어떤 일을 했기에 우리 교육의 멘토가 될 수 있을까?


서방 세계의 최고 통치자-카를 대제

 카를 대제는 742년경, 프랑크왕국의 왕 피핀(Pepin the Short)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카를 대제의 가장 큰 업 적은 물론 프랑크왕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한 일이다. 프랑크 족의 전통적인 보병대를 중무장 기병대로 탈바꿈시켜 오늘 날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지역을 손에 넣었다. 또한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무역을 부흥 시키는 등 로마 멸망 이후 유럽에 등장한 가장 강력한 정부를 구성했다. 카를 대제는 군사적 승리와 문화적 업적으로 인해 서유럽인 의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카를 대제의 생애(Vita Karoli )』를 쓴 아인하르트(Einhard, 770?~840)는 그의 그 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카를 대제는 헌신되고 신실한 그리스도교인이 되고자 항상 노력했는데 그의 신앙이 어린 시절 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 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 문에 그는 아헨(Aachen) 에 그토록 아름답고 웅장 한 성당을 건축했다. 이 성당은 값비싼 금과 은으 로 장식되어 있고, 각종 램프와 청동으로 만든 성 당 문이 설치되어 있다. 그는 이 성당을 건축하기 위한 대리석 기둥을 찾을 수가 없자, 로마와 라벤나로 사람을 보내어 그것을 구입하도록 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 일 아침과 저녁 규칙적으로 성전으로 갔고, 항상 아침과 저녁 미사에 참석했다.” 이렇게 신앙심이 강했던 카를 대제는 새로 정복한 곳들도 모 두 그리스도교화하고 싶어 했다. 그는 결국 800년에는 로마 교황에게서 황제의 관을 받음으로써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 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교황께서는 천하무적의 카를 대제를 로마로 초청 했다. 카를 대제는 그 초청에 응함으로써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비록 그가 이미 제국을 통치하는 지도자요 황제 였지만, 교황의 사도권 권위에 의거하여 제국의 황제요 통치 자로 공인받게 되었기 때문이다”(『‘성 갈렌 수도원’의 수도사 에 의해 쓰인 카를 대제의 전기』). 그때까지 황제라면 으레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황제를 떠 올렸고, 그만이 로마 황제의 정통 계승자임을 주장할 수 있었 다. 그래서 당시 비잔틴 황제는 대부분의 실권을 잃어버렸으 면서도 여전히 서유럽을 제국의 변방 정도로만 간주했던 것 이다. 카를 대제의 황제 대관은 그리스도교 이상을 실현하는 프랑크왕국의 통합에 기여했으며, 찬란한 서유럽 문화 형성 을 향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카를 대제의 문예부흥 

" 카를 대제의 가장 큰 업적은 물론 프랑크왕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한 일이다. 프랑크족의 전통적인 보병대를 중무장 기병대로 탈바꿈시켜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지역을 손에 넣었다. 또한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무역을 부흥시키는 등 로마 멸망 이후 유럽에 등장한 가장 강력한 정부를 구성했다. " 


사실 카를 대제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느라 제대로 교육을 받 지 못했다. 그래서 왕위에 올랐을 때 글을 읽기는 하지만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렇지만 카를 대제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 했고, 로마제국의 신화, 언어, 문화 등에 매혹되어 광대한 제 국을 문화적으로 쇄신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헨에 있던 자 신의 왕궁에 재능 있는 학자들을 모아 고대 문학의 ‘문예부흥 (Renaissance)’을 일으켰다. 동시에 카를 대제는 자신을 그 리스도교 제국 전체의 황제라고 생각해서 그리스도교의 제 도와 신학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특히 주교의 책무, 교구의 설립, 성당의 참사회 조직, 모든 신자의 예배 참석 등 에 힘썼다. 또한 그는 권력과 결탁한 정치적인 수도원장들의 부정과 축재가 계속되자 수도원 제도의 개혁 운동에도 착수 했다. 이 모든 계획을 실현하려면 매우 뛰어난 지성인이 필요했으 나 프랑크왕국 내에서는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카를 대제는 781년 이탈리아 파르마의 회의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눈에 띄는 학자를 발견했다. 중년에 접어든 그 학자는 성경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모든 분야의 지식 이 해박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리스어와 라틴어까지 능통 했다. 카를 대제는 그야말로 프랑크왕국의 교육을 개혁하기 에 최적임자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 학자가 바로 잉글랜드의 요크 지역 출신 ‘앨퀸’(Alcuin, 735?~804)이었다. 요크는 8 세기 무렵 그리스 출신 수도자가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된 이래 학교와 도서관이 발전하면서 상당한 학문 수준을 유지 하고 있었다. 앨퀸은 그리스도교 정신에 입각한 제국을 만드는 데 적임자는 카를 대제라 여겼기 때문에 그의 개혁을 돕는 데 헌신했 다. 앨퀸은 ‘타인의 발전에 봉사하고 싶은 바람’을 지니고 카 를 대제의 왕국을 통일하는 데 뚜렷한 방향성과 함께 현실적 인 토대를 제공했다. 하지만 앨퀸은 카를 대제가 작센족을 강 제로 개종시키려 하자 이를 강하게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지 닌 사람이었다. 앨퀸은 782년에 카를 대제의 명으로 아헨의 궁정 학교를 새 로이 재건하는 일에 착수했다. 과거에는 궁정 학교가 왕실이 나 귀족 자제들이 기사도를 훈련하는 목적으로만 존속해 왔 다. 카를 대제와 앨퀸의 개혁은 궁정 학교를 근본적으로 변화 시켰다. 이로 인해 전 유럽에서 훌륭한 학생들이 이 ‘국제적 인 아카데미’로 모여들었다. 카를 대제는 궁정 학교의 지식인 들에게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도록 격려했다. 한 예로 그들과 함께 온천욕을 하는 동안에도 신학이나 철학 문제에 대해 논쟁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 앨퀸이 주도한 카를 대제의 문예부흥은 성경의 외부 장식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었다. 앨퀸은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완성했다. 그는 과거에 각광받던 수사학뿐만 아니라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논리학(변증론)과 문법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이교도 문학을 잘 이해하기 위해 개발된 라틴어 문법학을 성경을 해석하는 데 적용함으로써 이후 그리스도교의 문화 발전에 중요한 초석을 마련했다. " 

앨퀸이 마련한 스콜라철학의 기초 

프랑크왕국 안에 훌륭한 교사가 부족한 것도 문제였지만 교 육에 필요한 인프라도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앨퀸이 왕국 내의 도서관 전체를 조사해 본 결과, 장서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앨퀸이 우선 도서관부터 건립하자고 제안했을 때, 카를 대제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앨퀸은 도서관을 건립하 기 위한 예비 작업으로 우선 값비싼 양피지를 확보해 줄 것을 청했다. 저렴하게 책을 만들 수 있는 파피루스를 생산하던 지 역은 당시 모두 이슬람 세력에게 점령당해서, 서방에서 책을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양피지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카를 대 제의 명으로 프랑크왕국 전체에서 생산된 양피지들은 아헨 의 궁정 학교와 투르에 있는 성 마르티누스 수도원 필사실로 운반되었다. 이 모든 일을 총괄한 앨퀸은 경험이 없는 새내기 필경사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태도로 서적의 생산과 도서관의 설립을 진두 지휘하여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앨퀸은 교육개혁에 필요한 회의에 참석할 때를 제외하면 대 부분의 시간을 어두운 필사실에서 보냈다. 

필사 작업은 추운 겨울에는 손이 동상에 걸릴 정도로 고생스러웠지만, 그리스 도교 제국이 완성되는 이상을 꿈꾸면서 펜을 놓지 않았다. 특히 앨퀸은 이 작업을 위해 코르비(Corbie) 수도원에서 개발 된 새로운 문자체를 활용했고, 여기서 현재 사용되는 알파벳 의 소문자가 유래했다[『발전하는 글자에 관한 편지(Epistula de litteris colendis )』] 카를 대제 이전까지만 해도 대문자만을 주로 사용했고, 각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 다. 카를 대제는 새로 개발된 문자체의 활용을 적극 장려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에 많은 고전 저작들이 사라져서 전 수되지 못했다. 그러나 카를 대제가 명한 필사 작업을 통해 서유럽에 남아 있던 필사본의 숫자는 네 배 이상 증가했고, 그 후에는 전수된 책이 사라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현재 서 양 문화가 자랑하는 양피지 필사본들 중 가장 오래된 사본 상 당수가 그 당시 카를 대제의 명으로 작성된 것이다. 그 당시 필사된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것은 역시 성 경과 그 주해서들이었다. 그런데 카를 대제의 교육개혁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문맹으로 남아 있었다. 이들 에게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 앞표지를 금과 보석, 또는 상아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게 되었다. 앨퀸이 주도한 카를 대제의 문예부흥은 성경의 외부 장식에 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었다. 앨퀸은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완성했다.
 
그는 과거에 각광 받던 수사학뿐만 아니라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논리학(변증론)과 문법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이교도 문학을 잘 이해하기 위해 개발된 라틴어 문법학을 성경을 해 석하는 데 적용함으로써 이후 그리스도교의 문화 발전에 중 요한 초석을 마련했다. 더욱이 이렇게 발전한 문법학을 활용 하여 히에로니무스 성인의 『불가타 성경』을 언어학적으로 고 친 교정본은 9세기 이후에 널리 활용되었다. 카를 대제와 앨퀸이 함께 이룬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통해 스 콜라철학이 태동되었다. 그러나 이 문예부흥은 귀족과 수도 자라는 소규모 사회 집단의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에 머물렀 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 교육개혁의 효과가 유럽 사회 전반에 미치기 위해서는 백 년 이상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빠른 시 간 안에 변화되는 부분도 있지만, 교육의 진정한 성과는 오랜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법인 가톨릭학원도 이제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고, 앞으 로도 더 성장할 예정이다. 이제는 과연 어떠한 이상을 위해 서 나아가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할 때다. 이러한 방향 설정에 카를 대제와 앨퀸이 가톨릭 정신을 교육을 통해 전달하려는 이상을 공유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 간 과정은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카를 대제는 자신의 대제 국이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발전해야 함을 절 감했다.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백 년 뒤에야 꽃피게 될 학문 적 기초를 마련하여 교육이 ‘백년지대계’임을 분명히 보여 주 었다. 

가톨릭 법인은 이에 덧붙여 확보된 재원을 가지고 교육 과 연구를 후원하면서도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인 가톨릭 정신의 함양을 꾸준히 지향해야 한다. 카를 대제의 후원을 받 은 앨퀸은 사심 없이 자신을 희생하여 교육을 쇄신함으로써, 뚜렷한 사명 의식을 스스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에 속한 모든 교육자와 연구자들도 개인적인 이 익에 매몰되지 않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보다 큰 이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카를 대제와 앨퀸이 수백 년 동안 이어질 스콜라철학의 토대를 마련했던 것처럼, 학교법인 가톨릭학원과 소속 교육자들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룸으로써 폐허가 된 한국의 교육계를 되살릴 본보기가 제 시될 수 있을 날을 기대해 본다. 




" 카를 대제는 자신의 대제국이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발전해야 함을 절감했다.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백 년 뒤에야 꽃피게 될 학문적 기초를 마련하여 교육이 ‘백년지대계’임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가톨릭 법인은 이에 덧붙여 확보된 재원을 가지고 교육과 연구를 후원하면서도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인 가톨릭 정신의 함양을 꾸준히 지향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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