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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학교법인 제113호] 가톨릭 교육의 멘토들 3 삶의 체험에 기반한 가치 교육: 성 아우구스티누스

by 박승찬 posted Nov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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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와 세속적 행복에 대한 집착만이 남은 현대사회에서 가톨릭 정신에 따라 살려는 교육자는 근본적인 회의 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이 지닌 가치관과 세속의 가치관이 충돌을 일으킬 때, 과연 자신이 간직해 온 이상이 과연 맞 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게 도와줄 수 있는 멘토는 바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 성인이다. 그는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살았으며, 인간적인 욕구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던 소위 ‘보통 사람’이었다. 그래서 현실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육자는 그에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체계화된 교육 이론 이외에도 진정한 스승답게 교육자들을 위해 매우 실용적인 충고들을 남겨 놓았 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가톨릭 교육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충고를 해 줄 수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의 교육에 대한 조언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Confessiones )』에서, 고향 타가 스테의 교사에게 매 맞던 체험을 고통스럽게 회상 하고 있다. 그는 그 체벌 이 교육적인 효과가 없었 다고 말하며, 당시 어른 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 이 받아들였던 강압적인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고 있다. 강제로 그리스어 를 배울 때의 느낌을 “저 달콤한 그리스 신화의 맛에다 쓸개를 타 놓은 것”(I, 14, 23같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교사들은 일정한 내용을 전달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흥 미를 유발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주체 의식이 강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부정적 체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하나의 인격체이며 자신의 학습을 주도해야 하는 주체” 라고 인정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즈음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찾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희망을 주는 현상이 다. 그렇지만 그들이 쉽게 사회의 과장된 기대나 자본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을 실 현할 수 있도록 강한 주체 의식을 길러 주어야 한다. 

사랑의 원리에 따른 교육: 향유와 사용의 구분


아우구스티누스가 ‘학습자 중심 교육’을 강조했다고 해서 교 육의 모든 내용을 학생들에게 맡겨 놓았던 것은 아니다. 교육은 개인의 발달을 도모하는 의도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필연 적으로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 그는 교육을 그리스도 자신으 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으로서 인식하면서, 교육에서는 하느 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 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입장은 “사랑하시오, 그리 고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시오(Dilige, et quod vis fac).”라 는 말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모든 행위가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스토커’의 비정상적인 집착이나 자녀 를 오히려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모의 과도한 사랑도 있기 때 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사랑이 인간 행위를 윤리적 으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아우구스티누 스는 우선 사람이 사물을 사랑하는 태도에 따라 두 종류의 사 랑을 구분한다. 즉 그 사물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사랑하는 것을 ‘향유(frui)’라고 부르고, 그 외에 있는 목적을 위한 수단 으로서 사물을 사랑하는 것을 ‘사용(uti)’이라고 한다. 이러한 구분을 교육에 적용시켜 보면, 우리가 마땅히 향유할 만한 것 을 사랑하는지, 즉 교육적 지향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를 살 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요즘 학생들은 양적 성장의 이데올로기와 감각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 를 반성할 여유조차 잃어버렸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부모와 학 생들은 자신이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것들의 노예가 되어 이 를 최고의 목적으로 삼아 ‘향유’하는 가치의 혼란에 빠지게 된 다. 이런 왜곡을 피하기 위해서 진정한 교육을 통해 사랑해야 할 것을 올바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랑의 질서에 대해 숙고 하고 이를 체화하는 일이 요구된다. 따라서 단지 학생들에게 수월성 교육을 통해 능력만 증대시켰다고 해서 교육이 충분 히 이루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교사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사랑의 원리’에 대해 가 르쳐 주는 것보다도, 학생들이 ‘사랑을 느끼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학생을 “형제적·부성적·그리고 모 성적 사랑으로”(『입문자 교리 교육』 XII, 17) 가르쳐야 한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사랑으로 이끌어야 할 뿐 만 아니라,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 고 있을 때에만, 학생들이 그 주제를 공부하고 싶도록 제대로 자극할 수 있다.



" 어릴 때부터 주체 의식이 강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부정적 체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하나의 인격체이며 자신의 학습을 주도해야 하는 주체”라고 인정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즈음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찾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희망을 주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쉽게 사회의 과장된 기대나 자본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강한 주체 의식을 길러 주어야 한다." 

역할 모델이 제시하는 모범의 중요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추상적인 이념에 대한 교육보다 도, 구체적으로 본받고 따를 수 있는 모범, 즉 ‘역할 모델’이 있을 때 사람들은 훨씬 더 쉽게 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의 한국 사회는 이런 표상을 제공 해 주지 못한다. 방송에서 가장 많이 부각되고 있는 정치인을 비롯한 소위 사회 지도층의 모습은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방 향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정치에 대한 혐오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또한 대부분의 학생은 쉽게 접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스타에게서 자 신의 이상형을 찾 고 있다. 그러나 금전만능주의는 이러한 스타들의 이미지를 상업적 인 목적으로만 이 용함으로써 청소 년이 쉽게 찾는 역 할 모델마저 오염 시키고 있다. 그래서 교사는 자 기 스스로 체험했 던 소중한 의미 찾 기를 통해 학생들 이 지니고 있는 무 한한 가능성을 일깨워 줘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멘토로 삼은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모습을 보며 얻은 체험을 토대로 교육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교사들은 자기 자신을 모방하도록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이다”(『음악론』 I, 6). 이에 따라 교사는 자신이 보여 주는 모범, 열정, 사랑을 보고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교사들이 학 생에게 먼저 보여 주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의 초대는 없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러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격적인 사 랑의 배후에 창조주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 느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가르치는 바로 그 사랑이야말로 배 우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과 자기 학생들에게 영감을 불어넣 어 주려는 교사가 지닌 책임감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교육자 개인들에게 완벽한 모범을 제시 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오히려 교사를 포함한 인간에게 모든 희망을 거는 일이 없어야 한다. 평범한 교육자라면 학생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을 통해 자기가 이룬 성과에 대해 오만 해질 수 있다. 또는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정반대로 자 신의 무능 때문에 부담감과 좌절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문 제를 극복하는 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 다. 그가 세속적인 수완으로 밀라노 황실 수사학 학교 교사가 되었을 때는 진정한 명예를 얻지 못했다. 그 자리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만을 추구했을 때 오히려 위대 한 스승으로서의 명예를 얻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모습에 끌리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설령 교사 자신이 완벽한 모범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학생 들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는 분들의 생애를 소개해 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교육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 해 가톨릭 교육에서는 가톨릭 정신을 구현한 역할 모델들(마 더 데레사, 김수환 추기경, ‘울지 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 등) 을 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 어릴 때부터 주체 의식이 강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부정적 체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하나의 인격체이며 자신의 학습을 주도해야 하는 주체”라고 인정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즈음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찾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희망을 주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쉽게 사회의 과장된 기대나 자본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강한 주체 의식을 길러 주어야 한다." 

실패와 좌절을 넘어서는 교육에 대한 열망


" 교육 현장에서 성공한 만남을 통해서주어지는 기쁨은 아무런 실패 없이 주어지는성취의 기쁨이 아니다. 더욱이 이 기쁨은 교사가학생들 위에 군림하는 데서 오는 권력욕의 충족이나,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오는 자만심과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인간의 지성이 작용하는 교육에서는 구별될 수 있는두 종류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극적인 회심과 같은 변화 를 기대할 수는 없다. 단지 학생들의 지향이 변화될 수 있도 록 준비시키는 것이 ‘외적인 교사’들의 사명이다. 그래서 교 사는 교육 현장에서 어려움이나 실패에 부딪혔을 때, 의욕을 상실하고 지향해 오던 가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런 태도 안에 ‘내적인 스승’의 자리에 자신을 놓으려는 교만이 숨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예기치 못한 교육적인 성과를 얻게 되는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 자주 경험하게 되는 실패를 넘어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려면 교사가 학생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끈기 있게 기다려 주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를 아우구스티 누스는 다음과 같 이 표현했다. “나 는 허약한 여행자 들을 허공으로 날 아다니도록 하는 것보다, 그들과 함께 걸어서 여행 하는 것을 더 즐겼 다. 그들은 아직 비행을 위한 날개 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악론』 VI, 1). 아우구스티누스의 충고에 따라, 교사가 학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 준다면, 이러한 인내는 학생에게만이 아니라 교사 자신에게도 새로운 통찰을 가져 다줄 수 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무조건 학생들의 요 구와 의도에 맞추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우구 스티누스가 말하듯, ‘자신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착각해 서 가르치기 어려운 학생’에게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상 대화시키고 ‘무지의 지’를 일깨워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 히 이런 학생들과 대화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지만, 교사들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학생들과 진실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많 이 만들어야 한다. 성숙하고 진실한 대화에 참여한 주체들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자신을 선물로 내어 줄 수 있다 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 는 선물이 될 때, 자신이 준 것 이상을 학생들로부터 되돌려 받는 놀라운 은총 체험도 가능해진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교사가 마음의 평안을 가졌을 때 교 육 효과가 더욱 커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학교 당국자들은 교 사들이 개인적인 여유를 가지고 자기 성장을 위해 노력함으 로써 학생들을 기쁘게 만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공간을 확보 해 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 현장에서 성공한 만남을 통해서 주어지는 기쁨은 아무 런 실패 없이 주어지는 성취의 기쁨이 아니다. 더욱이 이 기 쁨은 교사가 학생들 위에 군림하는 데서 오는 권력욕의 충족

이나,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오는 자만심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인간의 지성이 작용하는 교 육에서는 구별될 수 있는 두 종류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즉 교육에서는 지성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즐거움과 헌신적인 이웃 사랑으로 내적 활기를 느끼는 즐거움이 중요 하다(『입문자 교리 교육』 XI, 16). 이 즐거움 또는 기쁨은 ‘십 자가를 통한 부활’과 같이 실패와 인내를 넘어선 공동체적 기 쁨이어야 한다. 이 공동체적인 기쁨은 학생을 함께 가르치는 교사나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의 탁월한 능력을 발견 할 때 느껴지는 낙심에도 원용될 수 있다. 교사가 자신의 명 예를 취하기보다 학생이 진리에 다가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뛰어난 능력을 지닌 다른 동료가 거두는 성 공에 대해 함께 기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가르친 교사들에게 돌아오는 기 쁨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 이상인 경우가 많다. 이것이 새로 운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원동력으 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실패를 극복하고 인내하는 과정 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말하는 것(Cor ad cor loquitur)’이 이루어질 때, 그들 사이에 진정한 교육이 실 현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 교육자와 학생들이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내적인 교사’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일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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