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17) 가톨릭 철학의 흐름과 동향 1 - 포기할 수 없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

진리 탐구하는 신앙·이성의 ‘깊은 일치’ 회복 필요
초대교회, 교리 설명 위해 그리스 철학 적극 활용
중세에는 ‘이해 추구하는 신앙’ 목표로 조화 모색
현대, ‘현세적 행복 절대화’ 경향으로 정반대 입장
가톨릭신문 발행일 : 2013-07-21 [제2855호, 8면]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이라는 기획 특집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독자에게는 갑자기 등장한 ‘가톨릭 철학’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신학과 철학은 서로 다른 독립적인 학문 분야가 아닌가? 더욱이 기본적으로 신앙을 출발점으로 삼는 신학과 인간의 이성만을 유일한 탐구의 원리로 삼는 철학 사이에는 서로 오갈 수 없는 큰 간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제로 국내 유명 대학의 철학과에 진학한 학생들 중의 상당수는 날카롭고 비판적인 철학 내용을 배우면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가져 왔던 소박한 신앙이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한다. 심지어 중요 사상가들(듀란트, 하이데거 등)도 그리스도교 철학 또는 가톨릭 철학과 같은 용어를 주장하는 이들은 마치 ‘네모난 원’처럼 자체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거나 ‘철학자로서 진지하게 활동할 수 있는 정신적 소양이 부족하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성서와 신학을 탐구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가톨릭신학교에 들어온 많은 학생들은 무려 3년에 걸쳐서 배우는 엄청난 철학 내용과 씨름하면서 도대체 이 어려운 철학을 신학도인 자신들이 왜 배워야 하는지에 관해서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회칙 「신앙과 이성」(1998년)

마치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답을 해 주기라도 하려는 듯,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8년에 발표한 「신앙과 이성」이라는 회칙을 다음과 같은 인사로 시작하고 있다.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속에 진리, 곧 당신 자신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과 이성이 각기 상대편이 없으면 초라해지고 약해진다고 지적하면서, 양자가 “각각의 자율성을 훼손당하지 않은 채로 자기 본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깊은 일치를 회복해야 한다”(48항)는 것을 호소하기 위해 이 회칙을 반포했다.

이 회칙의 제4장에서는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가 지닌 중요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초기 그리스도교로부터 주요 변화단계를 개관하고 있다. 그 핵심적인 흐름만을 살펴보면, 이미 박해시기에 그리스도교에 부당하게 가해졌던 비판에 대답하기 위해 초기의 호교론자들은 그리스 철학을 과감하게 활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이단들이 발생하자 아프리카 학파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테르툴리아누스는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고 외치면서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철학을 수용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풍부한 인문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교부들(클레멘스, 오리게네스)은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초기 공의회(325년 니체아공의회, 381년 콘스탄티노플공의회 등)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 철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을 따르게 되었다. 더욱이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으로 존경받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받아들이는 한편, 그리스도교 신앙과 상충되는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수정함으로써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을 성공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었다.

중세 초기에 들어서면서 세속적인 학문을 유일한 진리의 판단으로 삼고자하는 변증론자와 철학을 ‘악마의 발명품이나, 기껏해야 신학의 시녀’라고 폄하하는 반변증론자 사이에 다시 한 번 큰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위기는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을 그대로 수용하여 신앙의 우선성을 강조하면서도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표현으로 이성적 설명의 중요성을 옹호했던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에 의해서 극복된다. 안셀무스는 “믿음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며,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라고 극단적인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그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했고, 이는 향후 전체 스콜라 철학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이 모든 발전과정에서 단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천사적 박사’라고 불리는 토마스 아퀴나스(1224/5~1274)이다. 이미 1879년에 「영원하신 아버지」를 반포했던 교황 레오 13세에 따르면 토마스는 “이성과 신앙을 날카롭게 구분”하였으나 “이 양자를 조화시켜 각각 자신의 권리와 품위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게 할 수” 있었다.(57항) 이와 같은 평가를 바탕으로 새 회칙은 토마스의 탁월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을 인용한다(43항).

“그(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 사상사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철학과 보편적 문화에 이르는 길의 선구자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찬란한 예언자적 통찰력으로 신앙과 이성 사이의 새로운 만남에서 제시한 요점과 해결의 씨앗은 세계의 세속성(saecularitas)과 복음의 근본성 사이의 화해였고, 따라서 세상과 그 가치들을 부정하려는 자연스럽지 못한 경향을 피하면서도 동시에 초자연적 질서의 숭고하고 준엄한 요구들로써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6세, 「사도적 서한」).

근대 이후에 일어난 신학과 철학의 철저한 분리

회칙 「신앙과 이성」은, 토마스를 비롯한 스콜라학자들에 의해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결정적으로 발전되었지만, 근대에 들어와서 다시 신학과 철학이 철저하게 분리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45항) 윌리엄 옥캄(1285?~1349)과 같은 학자는 신앙에 좀 더 넉넉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의도이기는 했지만, 신학과 철학을 날카롭게 분리시켜 버렸다. 그 결과로 한편에서는 ‘신앙만으로’(sola fide)를 외치는 루터를 따르는 개신교 전통이 나타나 타락한 인간이 지닌 이성 자체에 대한 깊은 불신이 생겨났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 사상가들은 인간의 합리성을 과장하면서 신앙과 대립하는 이성적 논거들만을 종합하여 일체의 신앙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하게 이성적인 거대 체계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이로써 교부들과 중세 사상가들에게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깊은 일치를 유지하고 있던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는 이상은 사실상 파괴되고 말았다.

신앙과 이성의 분리가 야기한 문제점들

회칙 「신앙과 이성」은 “근대 철학 발전의 대부분이 점점 더 그 리스도교 계시로부터 갈라져 나가 명시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에 이르게 되었다”(46항)라고 안타까움을 표한다. 이러한 분리가 가져온 결과는 현대에 까지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도한 합리성과 명확성만을 추구하던 근대 철학의 시도는 결국 그만큼 더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고 결국 회의론과 허무주의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이런 경향의 추종자들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리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이나 가능성은 애당초 없다고 주장했다.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진리에 만족하자고 주장하는 입장은 현대인들에게도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와 문화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또한 현세에서 철학적 개념으로 신앙에 대한 문제도 모두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관념주의에 대한 정당한 반발로 종교적 진리의 신빙성이 근본적으로 의심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무신론적 인본주의’가 생겨났다. 서구를 중심으로 무신론적인 경향이 널리 퍼지면서 현세적 행복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경향 안에서 내세에 약속된 진정한 행복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결국 현세적인 행복에 매몰되어 버린 수많은 ‘일상인’들을 양산하고 말았다. 이러한 경향은 근대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이 모든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과학주의를 통해서 더욱 강화되었다. 더 이상 자연 안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기획하는 것을 통해서 자연을 지배하게 된 근대적인 인간들은 이러한 과학발전이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한다.
 ▲ 2000년 5월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열린 ‘과학자들의 대희년’ 행사에서 망원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전 모습. 교황은 이 행사에서 1998년 반포한 회칙 「신앙과 이성」을 중심으로 인간 이성이 신앙에 던지는 도전들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회칙 「신앙과 이성」이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한다고 해서 이 모든 사상적 경향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들이 발견한 긍정적인 부분들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 한계점을 정확히 지적함으로써 발생한 문제점들을 함께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기획 특집에서, 앞으로 3주에 걸쳐 이러한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그 내용들을 좀 더 상세히 고찰하면서 현대 가톨릭 사상가들이 어떻게 전통 안에 담겨 있는 진리들을 수용하여 현대적으로 새로운 해답을 찾고 있는가를 다룰 것이다. 이러한 성찰을 토대로 마지막 주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톨릭 철학자들이 지녀야 할 사명과 신학자들이나 일반 평신도들이 이들이 발견한 내용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도 함께 숙고해 보고자 한다.



 ▲ 박승찬 교수박승찬 교수는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한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중세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한국중세철학회 회장, 한국가톨릭철학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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