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7. 20발행 [1274호]
 
[시사진단] 도대체 뽑을 사람도 없는데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7월 30일 재보궐선거가 다가오면서 곳곳에서 ‘투표에 참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 질문은 ‘여당이나 야당 소속 정치인들을 모두 믿을 수 없는데, 투표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같은 회의를 담고 있다. 모든 국민의 공분을 샀던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나 각 당의 공천과정이 파행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런 회의적 태도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미니 총선’이라 불리는 이번 재보궐선거마저 여름휴가가 겹친 시기에 실시되기 때문에 낮은 투표율이 예상된다. 요즘은 무기력하고 부도덕한 정치가들에게 실망한 국민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투표권의 소중함을 느끼기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다.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무용지물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을 어떻게 다시 얻었는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40여 년 전에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통치자에 의해 온 국민의 투표권이 유린당한 적이 있었다. 격렬한 반대에도 유신헌법이 반포되었고 그 결과 국민들은 투표권을 빼앗긴 채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거수기 노릇을 하는 대의원들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그곳에서 강행된 네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단일후보에 대한 찬성률이 99.9%가 넘는 투표결과가 나왔다. 이런 결과는 비민주적인 방식의 선거가 민심을 얼마나 왜곡했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개별 국민의 의견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던 ‘암흑의 시대’(Dark Age)를 수많은 젊은이와 민주시민들의 희생을 통해서 벗어났다. 그리하여 소중한 투표권을 되찾았고, 올해 들어 자주 행사하게 되는 투표의 권한도 바로 이러한 희생을 통해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중하게 획득한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서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한 국가에서 정의가 실현되는가를 가늠하는 기준은 과연 정치가가 ‘사사로운 사랑’(amor privatus)을 하고 있는지 또는 ‘사회적 사랑’(amor socialis)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사사로운 사랑’이란 그 나라 국민의 일부만을 사랑하는 사랑, 또는 정치가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사랑을 말하며, 사회의 분열, 온갖 차별과 탐욕을 키울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적 사랑’은 공동선(共同善)에 기반한 사랑, 화해와 통일과 공평을 도모하는 사랑이다(「신국론」XII,1). 물론 특정 정치인이 자신을 뽑아준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 선진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민주정치의 기본 태도이다. 그러나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 더욱이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외면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까? 공동선을 추구하는 후보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실망해서 투표권을 포기하려는 이들에게 가톨릭교회의 스승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선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장 작은 악을 선택하라!’(「신학대전」Ⅲ,68,11 참조) 그는 선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소중한 결정을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열악한 정치 현실에서는 단 한 번의 투표로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욕을 탐하는 나쁜 정치인을 걸러내는 행위만으로도 투표권의 행사는 충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아퀴나스의 충고가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부자격자들이 탈락되어 다시 선거가 진행되는 선거구뿐만 아니라 모든 선거구에서 고려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앞으로 다른 기회에 투표할 모든 국민에게 소중한 가르침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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