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09발행 [1289호]
 
[시사진단] 죽음보다 강한 희망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행복’과 ‘힐링’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화두가 된 지 오래지만, 우리 사회는 더욱 큰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육체적 통증과 심적인 괴로움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다. 필자도 3년 전에 6개월 간격으로 어머님과 아버님을 여읜 후 뼛속까지 스며드는 상실 체험을 했다.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가까운 벗 최중민 교수마저 떠나보내야 했다. 고3 때 처음 만나서 오랫동안 가장 가깝게 지내던 네 친구 중에 하나가 우리 곁을 떠나 버린 것이다. 부모님을 잃은 고통이 나무의 큰 뿌리 두 줄기가 잘려나간 아픔이라면, 벗을 잃은 슬픔은 “총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픈 극렬한 고통이었다. 천수를 누린 분들의 죽음과 달리 예상치 못하게 우리 곁을 떠난 이의 죽음은 더욱 큰 고통을 준다.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프랭클(V. Frankl)은 ‘창조적 가치’나 ‘경험적 가치’를 발휘할 수 없는 순간에도 ‘태도적 가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이나 타인의 죽음을 막아낼 수는 없지만, 극도의 무기력 상태에서도 그 죽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최 교수가 떠나기 전날 우리 부부가 방문했을 때, 최 교수는 가는 목소리로 “내가 힘이 없어, 말을 잘 못해”라며 오히려 우리를 배려하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주위의 사람들과 가족들을 배려하는 자세는 항상 보아 온 그의 태도와 너무도 일치했기에 더욱 가슴 아팠다. 세상을 떠난 최 교수의 곁을 3일간 지키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친구, 동료 교수님, 제자들의 조문행렬을 통해 그가 어떠한 열정과 성실함으로 살아왔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발인 날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에서 열린 노제에서 정문부터 추도식장을 거쳐 연구실까지 늘어선 채 애도하는 학생들의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은 그곳을 지나가는 이를 모두 오열하게 만들었다.

죽음이라는 벌을 받기에 적합한 이들은 호사를 누리며 잘살고 있는데, 하필 왜 이렇게 의롭고 소중한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이 다가오는가? 그를 데려가지 않으셨다면 그의 뛰어난 재능과 열정으로 더 많은 사랑을 베풀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무척이나 많이 읽은 철학책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부활 미사를 드리며 최 교수를 기억하던 중에 상실의 고통을 벗어날 작은 희망의 끈을 발견한 적이 있다. 제자들의 눈물, 특히 최 교수의 49재 때 마지막까지 지도했던 제자가 최 교수의 묘소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가져다 바치는 모습이 떠오르며 텅 빈 가슴 한구석에서 갑자기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토록 엄청난 능력과 재주를 가지고도 한 번도 교만한 적이 없었던 교수이자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일생 동안 실천했던 친구가 가족들, 제자들, 친구들의 마음 안에서 부활하리라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이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그가 사랑했던 만큼 자신의 일부를 땅에 묻고 잊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 떠나간 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그의 일부가 그대로 생생하게 남아 있으며 그를 기억하는 만큼 다시 살릴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제 위령성월을 맞아 기도할 때, 우리가 사랑했던 이의 기억을 마음에만 품지 말고, 그를 사랑했던 이들과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그가 과연 무엇을 사랑했고,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를 기억하며 그러한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이는 어느덧 아름다운 별자리가 되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추고 있다. 떠난 이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된 유대감 안에서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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