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화일반

로마 제국 통일하고 종교 자유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등록 :2016-05-2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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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줄리오 로마노(1520~1524), 바티칸 박물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로마 제국 전체를 다스릴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줄리오 로마노(1520~1524), 바티칸 박물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로마 제국 전체를 다스릴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 (2)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
‘헬조선을 떠나고 싶다.’ 요즈음 들어 주변에서 자주 듣는 푸념이다. 정치에 대한 환멸, 입시지옥, ‘N포’ 세대를 양산하는 취업 절벽 등이 ‘헬조선’을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변할 것 같지 않은 우리나라에 대한 실망감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렇지만 유학 기간을 포함해 10년 넘게 외국 생활을 한 나에게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과연 자기 국가를 버리고 탈출한 국민을 반겨줄 나라가 있을까?

극심하게 박해받던 초기 그리스도교인들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매우 컸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피신할 땅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박해의 주범인 로마 제국이 지중해 연안, 즉 당시 세계 전체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00년 가까이 박해가 지속되면서, 그리스도교인들이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평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종교를 믿어도 된다”는 복음이 들려온 것이다. 이러한 칙령을 선포한 이는 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Magnus, 약 272~337)였다.

콘스탄티누스의 불우한 어린 시절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의 장군 콘스탄티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4개 지역으로 나누어 2명의 황제와 2명의 부황제가 다스리는, 사분령(四分領) 체제였다. 콘스탄티우스는 젊은 장교 시절 소아시아에 주둔했을 때 헬레나라는 여성에게 반했다. 건강하고 발랄한 헬레나는 여관집 딸로, 콘스탄티우스의 열정적인 구애를 받아들였고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낳았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콘스탄티누스의 행복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끝이 났다. 당시 서로마의 황제 막시미아누스는 무수한 전공(戰功)을 세우고 개선한 콘스탄티우스 장군을 자기 딸 테오도라와 결혼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황제는 결혼 조건으로 콘스탄티우스에게 헬레나와의 사실혼 관계를 청산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콘스탄티우스는 헬레나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황제의 부마가 되어, 갈리아와 브리타니아를 포함하는 지역의 부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러고 나서 동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어린 아들 콘스탄티누스까지 정치적 볼모로 보냈다. 이런 상황에 처해서도 콘스탄티누스는 상심하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키울 기회로 삼았다. 그는 계속되는 전쟁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도와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얻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황궁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암투와 권모술수까지 철저히 파악했다.

부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의 원대한 꿈

아버지 콘스탄티우스 부황제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누스는 그 뒤를 이어 갈리아 지역의 부황제가 되었다. 젊은 콘스탄티누스는 인품, 외모, 체력, 키 등 모든 면에서 남들을 압도했다. 더욱이 다양한 경험을 지닌 정예부대를 거느린 그는 갈리아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또한 뛰어난 행정력으로 갈리아 지역을 재건함으로써 부하들과 국민들의 신임을 얻었다. 사분령 체제가 혼란에 빠지자, 콘스탄티누스 부황제의 추종자들은 그가 유일한 황제가 되어 서로마 지역 전체를 다스려 주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콘스탄티누스와 동고동락했던 부하들은 그를 황제로 추대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무력으로 로마를 점령하고 있던 막센티우스 황제로부터 ‘로마를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예부대 4만명을 이끌고 놀라운 속도로 로마 근교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로마 북쪽에 있는 밀비우스 다리 저편에는 훨씬 더 많은 수의 막센티우스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용감한 콘스탄티누스였지만 그날 밤엔 깊이 잠들지 못한 채 몸을 뒤척였다. 그러던 중 꿈속에 어떤 표식이 나타났고 “너희 모든 군대가 이 표식을 달고 전쟁터로 나가라. 그러면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음성이 생생하게 들렸다. 잠에서 깬 콘스탄티누스는 꿈에서 본 표식, ‘라바룸’(Labarum)을 그렸다. 라바룸은 가운데에 글자 같은 것이 있고, 그 주위에 월계관처럼 보이는 것이 둘러져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멋진 연설을 통해 부하들에게 신이 자신들을 보호한다는 확신을 주고, 라바룸을 부착하도록 명령했다. 용맹하고 확신에 찬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막센티우스가 강제 동원한 대군을 궤멸시켰다.

불우한 어린시절 보낸 뒤 황제 추대
분열된 제국 통일하고 새 수도 건설

종교자유 허용하고 몰수 토지 반환
교회 부지도 무상제공 ‘관용 정책’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하나의 신’
정치적 구상 완성 못하고 337년 사망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밀라노 칙령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리스도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에게 라바룸의 의미를 해석해주었다. ‘팍스’(Pax)의 약자처럼 보였던 ‘라바룸’의 문자는 실제로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XPIΣΤΟΣ)의 처음 두 글자였다. 그 해석을 들은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의 가호를 받아 승리했다고 여겼다. 당시 그리스도교는 로마 사회에서 배척을 받고 있었지만, 콘스탄티누스에게는 친숙했다. 그의 어머니 헬레나가 열렬한 그리스도교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이었던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가 다른 측면에서도 유용하리라 생각했다. 사분령으로 나뉘어 분쟁이 그치지 않던 로마 제국을 다시 온전히 통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이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새 제국을 하나로 통일하려면 전통적 다신교보다는 ‘유일신’을 섬기는 그리스도교가 훨씬 더 적합해 보였다. 그리하여 313년에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인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각자가 선택한 종교를 믿을 수 있는 자유로운 권리를 허용”한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박해 시대에 몰수한 교회, 토지, 그 밖의 모든 소유물을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지체 없이 돌려주었다. 더 나아가 라테란 대성당을 비롯한 많은 교회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해 주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러한 종교 관용 정책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새 로마 제국의 진정한 통일을 기대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두상(4세기),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두상(4세기),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콘스탄티노플의 건립과 니케아 공의회

그리스도교를 통해 새로운 정신적 기반을 마련한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지닌 새로운 이상을 분명하게 보여줄 도시를 계획했다. 그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한 후 로마 제국의 동쪽 절반까지 모두 점령했다. 드디어 옛 로마 제국 전체를 다스리게 된 ‘대제’ 콘스탄티누스, 그가 보기에 로마는 지나치게 서쪽에 치우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좀더 동쪽인, 그리스 반도와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 근처를 새로운 수도로 택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전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계획도시를 세웠으며, 그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콘스탄티누스 폴리스’, 그 도시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지금의 이스탄불)이다.

정치 안정과 문화 도약을 이룬 콘스탄티누스 대제였지만, 엄청난 제국을 아우르는 사상적 통일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었다. 그는 로마인 전체를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하나의 신’이라는 이상으로 일치시키고자 그리스도교를 도입했는데, 그 종교가 자유를 얻자마자 내분에 빠졌던 것이다. 이른바 전통적 그리스도교와 아리우스파의 충돌이었다. 전통적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한 하느님이라고 믿어온 데 반해,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아리우스파에서는 그리스도를 ‘2급신’으로 보았다. 제국의 이념적 통일을 기대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종교 분쟁을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했다. 그는 이를 위해 325년에 니케아(Nicea) 공의회를 소집했다. 이 공의회에서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본질을 지닌다”는 신앙고백(信經)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아리우스파의 반발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337년에 사망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그리스도교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밀라노 칙령’을 내림으로써, 그리스도교 정신이 서양 문화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13번째 사도’로 칭송받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분열된 로마 제국을 하나로 통일했을 뿐 아니라, 새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할 만한 권력과 부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과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교인들을 하나로 일치시킬 수는 없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역사적으로 놀라운 변화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그 변화를 스스로 체험하지는 못했다.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잘 지은 밥처럼 반드시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돌이켜 보아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1987년 6월, 군부 독재가 30년 가까이 지속되어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말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무렵에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 이를 통해 이전에 생각할 수 없던 언론의 자유와 민주적인 투표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또다시 30년이 지났건만 국민들이 꿈꾸었던 국가의 모습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올해 4·13 총선의 놀라운 결과가 없었다면 권력과 언론을 모두 손에 쥐고 있는 오만한 정부가 우리나라를 유신독재 시대로 되돌려 놓았을지도 모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비우스 전투 후 로마 제국의 대대적인 혁신을 이루었듯, 우리도 독재 세력을 깨뜨린 6월 민주항쟁과 4·13 총선 체험을 바탕으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헬조선’을 떠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바꿔야 한다는 사명의식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아닐는지.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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