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화일반

중세는 암흑의 시대인가?

등록 :2016-04-21 19:53수정 :2016-04-2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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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 뮌헨, 막시밀리아네움 소장). 프랑크왕국의 카를 대제가 800년 12월25일 로마에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황제로 대관된 이후 유럽은 본격적인 중세 문화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alt="프리드리히 카울바흐의 <카를 대제의 대관식>(1861, 뮌헨, 막시밀리아네움 소장). 프랑크왕국의 카를 대제가 800년 12월25일 로마에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황제로 대관된 이후 유럽은 본격적인 중세 문화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512px;">
프리드리히 카울바흐의 <카를 대제의 대관식>(1861, 뮌헨, 막시밀리아네움 소장). 프랑크왕국의 카를 대제가 800년 12월25일 로마에서 교황 레오 3세로부터 황제로 대관된 이후 유럽은 본격적인 중세 문화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 들어가며

무채색 아닌 다채로운 ‘중세 유럽’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계승발전해 
1000년 넘는 시간 속 숨은 보화 가득
제Ⅰ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계승한 중세
1. 고대의 중심에서 자라는 중세: 그리스-로마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만남
2. 서양 문화의 주역으로 등장한 그리스도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
3. 몰락하는 제국에 나타난 새로운 희망: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제Ⅱ부 어둠 속에 비치는 서광: 5~10세기
4. 고대와 중세를 연결하는 다리: 로마 최후의 철인 보에티우스
5. ‘중세’에 담기지 않는 또 하나의 중세: 비잔틴 제국
6. 유럽 문화의 새로운 토대: 카를 대제의 문예부흥
7. 하나의 언어로 표현된 보편적인 이상: 중세 라틴어의 역할

제Ⅲ부 스콜라 철학의 태동과 문화의 도약: 11~12세기
8.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9. 활짝 피어난 인간의 지적 호기심: 12세기 르네상스
10. 빛의 마법 안에 담긴 인간의 초월적 열망: 고딕건축

제Ⅳ부 낯선 문화와의 만남: 충돌과 수용
11. ‘낯설지만 아름다운’: 아랍문화의 융성
12. 성스러운 전쟁?: 십자군 전쟁의 그늘
13. 유럽 문화의 지형을 바꾼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

제Ⅴ부 중세 문화의 황금기: 13세기 
14. 서구 학문의 요람: 중세 대학의 탄생
15.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탁발수도회
16. 서구 지성의 금자탑: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제Ⅵ부 번영의 시대에서 기근의 시대로
17. 재판정에 불려 나온 인간의 지성: 1270년과 1277년의 단죄
18. 신앙과 다시 헤어진 이성: 윌리엄 오컴과 새로운 길
19. 중세의 가을에 부는 스산한 바람

20. 중세가 현대에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총정리)

지난 2016년 2월19일 이탈리아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별세했다. 그러나 그는 <중세> 시리즈라는 4000쪽이 넘는 ‘중세 대백과’를 편집하여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에코는 자신이 직접 쓴 서문에서 중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 특이하게도 중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세는 한 세기가 아니다’, ‘중세는 어둠의 시대 혹은 암흑기가 아니다’, ‘중세는 고전 문화를 무시하지 않았다’, ‘중세만이 화형의 불꽃을 타오르게 한 시대가 아니다’ 등. 이러한 정보를 접하고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중세는 암흑기’라고 알고 있던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인가?

필자는 1988년부터 1998년까지 독일에서 중세철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이후 학계의 변화를 보고 놀랐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세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책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민주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일들이 벌어지면, 여전히 ‘마치 중세 암흑기와 같다’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연재에서는 독자들이 중세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고 중세에 관련된 많은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연재에 들어가기에 앞서, 위에서 언급된 편견들 중에 몇 가지는 간단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중세에 대한 다양한 편견들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바로 ‘암흑의 시대’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을 통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끝없는 공포, 광신주의와 이교에 대한 편협성, 역병, 빈곤과 대량 학살로 인해 문화적이고 물질적으로 쇠퇴한 시대를 떠올릴 수 있다. 또는 교회의 권위가 인간의 이성을 속박하고 뛰어난 학자들이 쓸모없는 신학 연구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었던 ‘지성적 불모’의 시대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한때 이러한 편견에 따라, 중세 철학을 아예 생략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고대철학에서 사변 이성이 다시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으로 건너뛰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연구들에 따르면 결코 중세 전체를 암흑기라 부를 수 없다. 굳이 그 표현을 사용한다면,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과 카를 대제의 문예부흥(800년께) 사이에 있었던 시기만을 그렇게 부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편견은 왜 우리에게 상식으로 통하게 되었을까?

중세에 대한 편견의 직접적인 원인은 중세와 근대의 사이에 놓인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자’들에게 있었다. 그들이 체험했던 15세기 이후 쇠퇴한 스콜라 철학에서는 지나치게 세분화된 개념들에 관한 논쟁들이 오히려 학문의 중요한 발전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를 체험했던 인본주의자들은 중세 사상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자신들을 고대 사상의 직접적인 계승자로 자처했다. 또한 근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개발된 실험 방법은 중세 자연학 이론들의 많은 오류를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중세의 자연관에 대해 대대적인 비판이 가해졌다. 이렇게 근대 과학의 발전은 중세에 대한 편견을 더욱 가속화했고, 이는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편견을 집대성했던 19세기 독일 역사가들의 견해가 일본의 역사가들에게 수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영향으로 ‘암흑의 시대’라는 표현이 우리나라의 교과서에까지 실리면서 중세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중세 사상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긍정적 평가는 중세를 강하게 비판했던 근대 사상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시작되었다. 데카르트부터 강조되기 시작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는 헤겔의 철학에서 그 절정에 도달했지만, 이런 경향은 보편적 이성 이외의 감정, 육체, 개체들의 소중함을 무시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더욱이 20세기 들어 1·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환경오염 및 점증하는 자연재해 같은 새로운 위협 속에 모든 것이 덧없으며 찰나적이라는 허무주의가 널리 퍼져 나갔다. 오늘날 여러 학자들은 근대 사상이 야기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 고대 철학과 중세 철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더욱이 최근에 벌어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지만 인류는 그 앞에서 엄청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는 새롭게 펼쳐진 이러한 기술 문명의 놀라운 가능성 앞에서 위험 요소를 어떻게 극복하고 진정한 발전으로 나아갈 것인가?

수많은 낯선 문화와 충돌하면서도 새로운 학문을 수용하면서 발전해 갔던 중세는 이 질문에 대해 매우 많은 성찰의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다. 중세인들은 그리스도교와의 만남에서 얻게 된 통일과 질서에 대한 열망 안에서 고대 그리스의 소수 엘리트들이 논했던 다양한 주제들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특히 중세의 문화는 과거의 연구처럼 서유럽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1000년 동안 찬란히 발전해간 비잔틴의 문화와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발전해갔다. 또한 중세 스콜라 철학은 아랍 문화를 거쳐 다시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그리스 사상가들의 저작을 받아들임으로써 최고의 융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중세인들은 모두 통일과 질서에 대해 추구하면서도, 저마다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상을 전개했다. 이렇게 중세는 결코 획일화된 무채색의 세계가 아니라 각각의 다양한 생각이 열띤 토론과 논쟁을 통해 뚜렷하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다채로운 세계였다.

중세의 다양성은 시대적인 변화 안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중세는 17세기처럼 한 세기도, 르네상스처럼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진 짧은 시기도 아니다. 더욱이 중세의 시기 자체가 철학, 역사, 경제, 정치 각 분야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될 수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을 고대의 종말로 보고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무어인들이 에스파냐에서 추방된 해(1492)까지의 1016년이란 긴 세월을 중세로 본다. 그러나 중세 철학사 서적들은 대부분 그리스도교와의 사상적인 연관성 때문에 그리스도교 교부철학의 시작(2세기)부터 루터의 종교개혁(1517)에 걸쳐 발달한 서양 철학의 흐름 전체를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역사학계의 일반적 견해에 따라 5~15세기까지의 중세를 중심으로 다루면서도, 이를 이해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그리스도교가 서구 문화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시기에 대한 간략한 안내도 제시할 것이다.

중세는 그 긴 시간만큼 사계절의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예를 들어, 아직 정립되지 않은 다양한 이론이 난무했던 그리스도교의 초창기를 거쳐 아우구스티누스가 종합한 거대한 사상 체계는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위해 9세기까지 추운 ‘겨울’을 지내야 했다. 일부 학자가 중세의 시작으로 삼는 카를 대제의 문예 부흥(800년께)과 함께 다가온 스콜라 철학의 ‘봄’은 다양한 학문 방법론의 개발을 통해 본격적인 발전을 준비했다. 그 결과 12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을 통해 맞게 된 스콜라 철학의 융성기(13세기)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황금기와 비견될 수 있는 놀라운 사상적인 발전을 이룩했는데, 이는 가장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여름’에 비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발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14세기 들어 시작된 자연재해와 인간이 저지른 무질서들로 말미암아 찬란했던 중세의 전성기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고대하는 ‘가을’로 접어들고 말았다.

‘중세는 암흑의 시대’라는 판단이 근대 이후 학자들의 오해로부터 유래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는 500년 이상 지난 중세 사상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과연 의미를 지닐지 물어볼 수 있다. 다양한 중세 철학은 이성적인 탐구의 측면에서도 다른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며,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가치를 찾기 위해 경건하게 노력했던 중세 철학자들의 노력과 성과들이 ‘헬조선’이라 불리며 절망의 상징이 된 한국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도 사유의 단서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그럼에도 이 연재는 에코의 <바우돌리노>라는 소설처럼 저기 동쪽 어디엔가 있는 황금으로 가득 찬 ‘요한 사제 왕국’ 같은 것을 찾아 중세로 떠나자는 유혹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단순히 중세를 이상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너무나 다른 상황에 부딪힌 현대인들이 의미를 찾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적 관점을 지닌 독자들도, 그 관점을 유지한 채, 무려 1000년이 넘는 긴 시간 안에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화들을 함께 찾아 떠나는 여행에 동참하도록 초대하고 싶다. 물론 그 과정 안에서 정말로 암흑기라고 불릴 만한 어둠과 야만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과연 우리의 시대는 중세의 그 어둠과 야만을 얼마나 극복했는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져 보면 어떨까? ‘중세는 암흑의 시대’라는 판단은 잠시 유보해 두고, 10개월의 여정이 끝난 후 돌아보며 중세를 다시 평가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께서 이번 연재를 통해 중세 철학이라는 인류 문화의 보고에서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의식을 얻거나 자신이 고민해왔던 문제를 해결할 작은 성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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